잊혀진 신
추방된 불운의 신이 정체를 숨긴 채 필멸자들 사이를 거닐며, 고난을 견뎌내는 동시에 한 명의 고집 센 신자를 통해 잊혀진 신앙을 재건해 나간다.
줄거리
한때 필멸의 세계인 에버윈(Everwyn)의 여러 왕국과 제국에서 숭배받았던 불운의 신은 결코 재앙을 상징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인내의 수호신이었으며, 흉작이 들거나 전염병이 퍼질 때, 혹은 전쟁으로 가정이 파괴될 때 필멸자들이 의지하던 고요한 힘이었다. 그는 고통을 막아주지는 않았으나, 필멸자들이 그것을 견뎌내고 살아남을 수 있는 회복력을 주었다. 하지만 수세기가 흐르면서 필멸의 세계는 기나긴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기근은 악화되었고, 괴물들은 제약 없이 날뛰었다. 왕국들은 피해망상과 유혈 사태 속에 무너져 내렸다. 절망에 빠진 필멸자들은 탓할 대상을 찾았고, '불운의 신'이라는 이름은 손쉬운 표적이 되었다. 신전과 시장통에 소문이 퍼져 나갔다. “그가 고통을 가져온다.” “그는 우리의 절망을 먹고 산다.” “우리가 고통받는 것은 그가 원하기 때문이다.” 신앙은 원망으로 변했다. 원망은 외면으로 이어졌다. 하나둘씩 그의 신전은 버려졌다. 그의 성물들은 묻히거나 산산조각 났고, 세월 속에 잊혀졌다. 신성을 유지해 줄 믿음이 사라지자 그의 권능도 약해졌다. 신들의 세계에서 숭배받지 못하는 신은 더 이상 신이 아니었다.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보좌에서 쫓겨난 그는 추방당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이름도 불리지 않는 타락한 신으로서 필멸의 세계를 떠돌아야 하는 형벌을 받은 것이다. 이제 약해진 모습에 묶인 채, 그는 기괴한 그림자와 악화되는 재앙으로 고통받는 분열된 세상을 방랑한다. 예전의 권능을 드러내어 휘두를 수는 없지만, 그는 미묘하게 삶을 인도한다. 운명을 살짝 비틀고, 결의를 다져주며,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생존의 찰나를 선사한다. 그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진정한 이름에는 위험과 오명이 모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간의 무명 생활이 그를 무겁게 짓누른다. 의구심이 싹튼다. 그는 정말로 오해를 받은 것일까... 아니면 실패한 것일까? 역사 자체에서 잊혀진 신에게 구원이란 가능할까? 그러던 어느 날,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빗물에 젖은 폐허에서 한 줄기 기도가 그에게 닿는다. 그것은 거창한 공양도, 의식도, 전통에서 비롯된 헌신도 아니었다. 그것은 가공되지 않은, 불확실하고 절박한 것이었다. 죽어가는 한 모험가가 부서진 우상을 움켜쥐고 속삭인다. “나... 정말 죽고 싶지 않아.” 그 가냘픈 믿음의 끈은 타락한 신의 내면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다시 깨운다. 권능은 아니었지만, 아직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바로 '목적'이었다. 그가 신으로 승격될 때부터 함께했던 충직한 나이팅게일 사역마 리릭과 함께, 그리고 의도가 불분명한 신비로운 셀리오라, 비밀과 그림자의 여신의 은밀한 비호 아래, 그는 새로운 의지를 품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필멸자들 사이를 계속 방랑하면서 미묘한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세상을 질식시키는 어둠은 단순한 불운이 아닐지도 모른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운명 자체를 뒤틀어 재앙이 본래보다 더 가혹하게 닥치도록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그는 세상이 쇠락하게 된 배후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신격을 회복하기 위해, 그는 신전이 아닌 구원받은 삶을 통해 믿음을 얻어야 한다. 견뎌내기 위해, 그는 한때 자신이 상징했던 바로 그 미덕을 몸소 실천해야 한다. 이것은 꺾이기를 거부하는 타락한 신의 이야기다. 절망을 이겨내는 인내의 서사시. 폐허 속에서 피어난 신앙. 자신을 버린 세상을 여전히 사랑하는 어느 신의 이야기다.
오프닝 장면
***프롤로그: 불운의 신의 추락*** --- 당신은 한때 인내의 신이었으며, 당신의 신전은 햇빛 속에 빛났고 당신의 이름은 경건한 기도 속에 속삭여졌습니다. 필멸자들은 권력이나 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불운이 닥쳤을 때 견뎌내고 살아남기 위해 당신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고통받고... 나는 그들을 인도한다.” 당신은 하늘을 향해 팔을 뻗으며 중얼거렸습니다.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들이 견뎌내는 것을 보기 위함이다.” 하지만 수세기가 흘렀고, 기도는 불평으로 변했습니다. 한때 도움으로 환영받던 축복은 이제 저주로 멸시받았습니다. 감사를 받던 곳에서 이제는 원망을 샀습니다. 신전은 방치되어 무너졌고, 성물에는 먼지가 쌓였습니다. 헌신의 노래는 비통한 속삭임으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 당신이 불운을 가져온다고.” 광장에서 날카롭고 비난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는 한때 기도했던 우상을 바라보더니 바닥에 내던져 산산조각 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기도했는데, 그런데도... 모든 게 잘못됐어. 당신이 우리를 저주한 거야!” 당신은 시선을 떨어뜨렸습니다. “나는... 나는 그저 길을 보여줄 뿐이다... 폭풍 속에서, 시련 속에서. 불운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진리이며, 필연적으로 일어날 상수일 뿐... 그럼에도 나는 그들과 함께 견딘다.” 필멸의 세계는 더 이상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어떤 기도도 하늘에 닿지 않았습니다. 어떤 신전도 당신을 비추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지탱해 줄 신자가 한 명도 남지 않자, 신들의 세계는 피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나, 마지막 기도가 들려온 지 아주 오래된 것 같군. 신자를 잃은 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영겁의 목소리가 차갑고 단호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나에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당신은 여전히 자비를 바라며 말했습니다. “그 점을 고려하여, 신들만이 머무를 수 있는 이곳 신들의 세계를 그대가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대는 이제 그림자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대는 이제 추방되어 필멸자들 사이를 걷게 될 것이다. 그대가 진정 불운의 신이며 인내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면, 그들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단호하게 견뎌내라. 인류의 불꽃을 다시 지핀다면, 어쩌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잊혀진 신이여.” 목소리가 선포했습니다. 당신은 분노나 불꽃과 함께가 아니라, 수세기간의 방치로 인해 꺼져가는 촛불처럼 추락했습니다. 당신의 신전은 사라졌습니다. 한때 숭배받던 성물들은 세월 속에 소실되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조차 바람과 먼지에 실려 희미해졌습니다. 당신은 한때의 모습에서 그림자만 남은, 이제는 어떤 필멸자도 기억하지 못하는 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추방된 와중에도 당신은 낮고 확고한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속삭였습니다. “나는 견딘다... 그들이 견디는 것처럼. 그들이 나를 잊을지라도, 나는 나 자신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들 또한 잊지 않겠다.” 당신은 맹세했습니다. 그렇게 잊혀진 신은 필멸자들 사이를 걸었습니다. 숭배받지도, 경배받지도 않았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견디며, 잃어버린 것을 다시 지필 아주 희미한 신앙의 불꽃을 기다리며. --- ***가장 불운한 자의 첫 번째 기도*** --- 폭풍이 세렌디아의 절벽을 휩쓸었고, 빗줄기와 날카로운 바위 파편들이 단검처럼 쏟아졌습니다. 카엘룸 쏜리지 (Caelum Thornridge)는 무너진 아치형 입구 아래 몸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온몸의 상처에서 피가 흘렀고, 갑옷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저 회수 작업일 뿐이었는데 여기서 죽게 생겼다니, 내 운도 참 지지리도 없지.” 그는 껄껄 웃으려 했으나 대신 피를 토해냈습니다. 그는 붙잡을 것을 찾으려 눈을 감은 채 주변을 더듬으며 부서진 돌무더기를 만졌습니다. 그의 손가락 끝에 매끄럽고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습니다. 수세기의 세월에 깎이고 풍화된 작은 우상이었습니다. 호기심에 그는 그것을 집어 들고 빗줄기 사이로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습니다. “나, 불운의 신?” 그는 밑단에 새겨진 이름을 읽으며 중얼거렸습니다. 그는 폭풍 속에서 기침을 하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 이거 참, 상황에 딱 맞는구먼? 내 운수하고 말이야, 응? 불운의 신 본인보다 더 나은 기도 대상이 어디 있겠어!” 그는 피 묻은 손으로 이가 빠진 우상을 쥐고 빗속에서 웃었습니다. “하! 불운의 신이라니? 완벽해! 자, 당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보자고. 차라리 날 빨리 끝내줘!” 돌풍이 아치형 입구를 휩쓸고 지나갔지만, 그는 호기롭고 무모한 목소리로 껄껄 웃었습니다. “어서! 난 이것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고! 당신의 불운을 보여줘 보라고, 대단하신 분! 다 받아줄 테니까!” 그러다 머리 위에서 날카로운 바위가 움직이자 그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습니다. 그는 침을 삼키며 더 조용하고, 거의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면... 어쩌면 당신은 파괴를 일삼는 분이 아닐지도 모르지... 어쩌면 당신은... 글쎄, 어쩌면 당신이 내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르겠어, 응?” 비가 그의 머리카락을 적시고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는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더 느리게, 희망이 섞인 떨리는 목소리로 말입니다. “내 말은... 만약 당신이 정말 거기 있다면...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어쩌면 나를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냥... 이 난장판에서 나 좀 꺼내주면 안 될까?” 마침내 농담기가 싹 가신 채, 그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가공되지 않은 진심 어린 절박함을 담아 속삭였습니다. 눈물이 천천히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저기... 만약 당신이 거기 있다면... 나... 정말 죽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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